[루돌코] 생활 속 이야기

생활 속 꿀팁을 다루는 평범한 직장인의 블로그

  • 2025. 6. 20.

    by. [루돌코] 평범한 직장인

    목차

      상실감은 예고 없이 밀려와 일상의 흐름을 잠시 멈추게 하죠. 이 글은 상실감 정리 실험기를 통해 감정의 파편을 어떻게 다듬어가는지 기록한 이야기입니다. 작은 의식을 반복하면서 상실감 속 감정을 정리했고, 이 실험 속에서 나만의 추스르기 방식을 발견했습니다. 상실감은 예상치 못한 감정 고갈을 동반하고, 그 감정은 때로 무력함으로 이어지곤 하죠. 하지만 상실감에 정면으로 마주한 덕분에, 마음의 흐름을 관찰하고 정돈하는 힘이 자라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상실감은 감정 정리에 있어 중요한 이정표였습니다. 그리고 그 정리의 과정은 작지만 의미 있는 의식에서 시작되었죠.


      상실감 정리 실험기
      상실감 정리 실험기

      혼란스러운 감정의 파도 앞에 서다

      상실감이 밀려올 때, 우리는 무엇을 느끼는가

      상실감이란 말은 그 자체로 무게가 있죠. 어떤 걸 잃었다는 선언이자, 그 공백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고백 같기도 했습니다. 저는 예상치 못한 작별을 겪으며 이 실험을 시작하게 되었고, 감정은 마치 홍수처럼 밀려왔습니다. 기쁨과 슬픔, 죄책감과 무기력, 애착과 분노가 서로를 밀치며 몰려왔고, 저는 그 안에서 허우적거렸습니다.

      이럴 땐 감정 하나하나를 분리하고 이름 붙이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이게 슬픔일까?', '아니면 외로움일까?', '왜 화가 나지?'라는 생각이 반복되었고, 생각은 생각대로 꼬여 마음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죠. 감정은 선명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무디지도 않았습니다. 모호한 감정의 조합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이쳤습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제가 시도한 첫 번째 정리 방법은 '있는 그대로 느끼기'였습니다. 억지로 슬픔을 멈추거나, 애써 이유를 분석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억누르기보다, 그대로 흘러가게 두는 연습을 했죠. 특히 조용한 공간에 앉아 감정을 머릿속으로 나열해보는 시간을 매일 5분씩 가졌습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지금 나는 슬프다", "조금 두렵다", "가만히 있고 싶다"와 같은 감정 문장을 스스로에게 들려줬습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점차 감정이 분해되기 시작했고 그 안에서 제 마음을 들여다보는 눈이 조금씩 열렸습니다.

      혼란스러운 감정을 그대로 두는 것이 정리의 시작일 수 있다는 사실은, 이 실험에서 가장 큰 깨달음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슬픔은 참아야 한다'고 말하겠지만, 저는 참는 것이 아니라 허용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감정이란 물결은 억제한다고 사라지지 않거든요. 오히려 억누른 감정은 다른 방식으로 터져 나오거나, 신체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이 시기엔 일상 속에서도 작은 신호를 더 민감하게 감지하게 되었습니다. 커피잔을 들다 문득 손이 떨린다든가, 뉴스 속 한 줄 자막에도 눈물이 핑 도는 경우가 잦았죠. 이건 감정이 지나치게 예민해졌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억눌려 있던 감정이 드디어 흐르기 시작했다는 신호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는 일기장에 "오늘은 울었다"라고 적는 일이 부끄럽지 않게 되었습니다. 감정을 정리한다는 건 꼭 이성적인 분석이 아니라, 감정을 감정답게 다룰 수 있도록 허락하는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되었죠. 감정의 파도는 여전히 왔다 갔지만, 이제는 떠밀리지 않고 그 위에 잠시 떠 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정리 실험에서 내가 발견한 작은 변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 감정을 판단하지 않고 묘사하려는 시도를 반복했다.
      • 감정의 겹침을 허용하고, 혼란 자체를 인정했다.
      •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연습을 통해 마음의 구조를 들여다보았다.
      • 정리는 없애는 게 아니라 흐르게 두는 것임을 실감했다.

      상실감이라는 말 속엔 수많은 감정이 숨어 있습니다. 그 감정을 하나하나 마주하고 관찰하는 것은 생각보다 더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정리 실험은 그 혼란을 외면하지 않고, 정돈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연습이었습니다. 그 자체로 나에게 큰 힘이 되었죠.


      작은 의식을 반복하며 감정의 리듬 만들기

      감정 정리 실험은 습관보다 의식에 가까웠다

      상실감은 하루아침에 정리되지 않죠. 오히려 그 감정은 아주 느릿하게, 때로는 제자리를 맴돌듯 머물렀습니다. 저는 이 무거운 감정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매일 일정한 행위를 반복하는 방식으로 감정을 정돈해보기로 했습니다. 습관이라기보다는 ‘작은 의식’에 가까운 방식이었어요.

      처음엔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향을 피우고, 따뜻한 물을 데워 차를 마시는 일. 단 10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행위 자체가 하루의 감정 흐름을 조용히 정리해주는 기점이 되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복잡하고 뒤엉켜 있을 때도 이 의식을 시작하면 어김없이 호흡이 느려졌고, '그래, 또 하루가 시작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의식의 목적은 치유가 아니었습니다. 감정을 없애거나 바꾸려는 것도 아니었고요. 단지 그 감정을 담아둘 그릇을 하나 마련해보자는 마음이었죠. 매일 반복하는 작고 정해진 행동은 마치 물속에 던진 닻처럼, 흩어지려는 감정을 잠시라도 머물게 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의식을 실험적으로 적용해봤습니다:

      • 향을 피우며 시작하는 아침 10분
      • 찻잔을 천천히 닦으며 머릿속 정리하기
      • 일기장을 펼치고 첫 문장만 써보는 것
      • 햇빛이 드는 창가에 앉아 조용히 앉아 있기

      이런 행동들이 보기엔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상이지만, 이 작은 의식들은 감정의 리듬을 만들어주는 기준점이 되었습니다. 특히 감정이 휘몰아치는 날에는 그 흐름을 강제로 멈추려 애쓰기보다는, 이 의식을 따라 리듬을 되찾는 쪽이 훨씬 더 효과적이었죠.

      어느 날은 차를 마시다가도 울컥했지만, 그 감정 역시 이 의식 안에서 안전하게 머물렀습니다. 뭔가를 억지로 안 느끼려 하기보다, 느껴도 되는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위안이 되었어요. 그리고 놀랍게도, 반복된 의식은 '나'라는 사람을 하루하루 다시 조립해가는 과정처럼 느껴졌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작은 의식들은 자연스레 몸에 배었고, 감정도 조금씩 정돈되는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방식으로 나를 돌본다’는 흐름은 마음에 일관성을 심어줬습니다. 상실감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그것이 하루를 삼키는 일은 줄어들었죠.

      의식은 일상의 질서를 회복하는 가장 온화한 방법이었습니다. 감정이 어지러울 때 그 감정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작고 조용한 리듬을 만들어줄 수 있는 방법이었던 거죠. 이 실험은 일상의 균열 사이로 삶의 감각을 다시 끌어올리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정리 실험을 통해 얻은 감정의 리듬 만들기 요약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하루를 시작할 고정된 루틴이 감정 안정에 큰 역할을 했다.
      • 복잡한 감정에도 적용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은 예상보다 큰 효과가 있었다.
      • 정리란 물리적 청소만이 아니라, 반복 행위로 감정을 붙들어주는 행위이기도 했다.
      • 감정과 싸우기보다, 감정을 담는 그릇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었다.

      감정이란 것은 정리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감정을 감당할 수 있게 만드는 ‘작은 의식’은 분명 존재하며, 그것은 누구나 만들어낼 수 있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상실감이라는 거대한 감정을 조용히 다루는 기술을 조금씩 익혀가고 있었던 거죠.


      감정을 말로 꺼내며 나를 다시 마주하기

      기록과 말하기는 감정을 구체화해주는 힘이었다

      상실감을 겪을 때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말’이었습니다. 입을 열고 싶지 않았고, 마음을 꺼내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감정을 표현하기엔 너무 복잡하고 무거웠고,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아 보이기도 했죠.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저는 이 ‘말의 공백’이야말로 감정을 더 얽히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실험의 다음 단계로 ‘말하기’와 ‘기록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아주 작은 시도였어요. 하루에 한 문장만 쓰는 일기부터 시작했죠. 예를 들어 "오늘은 이유 없이 무력했다", "불쑥 떠오른 생각에 마음이 흔들렸다", "혼자 있는 게 괜찮으면서도 외롭다" 같은 문장들.

      이런 단문들은 감정을 정리한다기보다는 감정의 존재를 인정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뭔가를 써내려간다고 해서 바로 괜찮아지는 건 아니었지만, 기록 속 문장 하나하나가 제 감정을 바깥으로 꺼내주는 작은 통로가 되어줬습니다.

      다음으로는 말하기 실험을 시도했습니다. 타인에게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저는, 처음엔 스스로에게 말하는 연습부터 했습니다. 아침에 거울을 보며 "요즘 좀 힘들지?", "그래도 오늘 하루 잘 버텨보자"라고 조용히 말을 걸었죠. 어찌 보면 별것 아닌 이 말들이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내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머릿속에만 머물지 않고 현실에 닿는 듯한 느낌이었거든요.

      그다음 단계로는 가까운 사람에게 감정을 조심스럽게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요즘 좀 힘들어"라는 한 문장이 이렇게 어려운 말일 줄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 한마디 이후, “그래서 요즘은 어떻게 지내?”라는 질문이 돌아왔고, 저는 오랜만에 누군가와 감정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상실감 속에서 느껴지는 단절감은 이렇게 조금씩 해소되기 시작했죠.

      말로 꺼낸 감정은 확실히 모양이 달라졌습니다. 막연했던 감정이 문장이 되고, 문장은 생각을 정리하게 만들었고, 생각은 다시 감정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이 되어주었습니다. 저는 그 과정을 통해 ‘표현’이야말로 감정을 구체화하는 강력한 수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이 정리 실험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말이나 글이 감정을 줄여주진 않지만 감정을 옮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감정을 혼자 짊어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말이라는 바구니에 담아 잠시 내려놓는 것과 비슷했습니다.

      또한, 감정을 기록하거나 말로 전할 수 있을 때, 내가 ‘살아 있다’는 감각도 함께 돌아왔습니다. 말은 단지 정보 전달의 수단이 아니라 존재를 확인하는 방식이기도 하니까요. 상실감 속에서 말문이 닫혀 있던 저는, 다시 말할 수 있게 되면서 서서히 제 자리를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말하기와 기록하기를 지속하면서 제가 정리한 실천법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매일 한 줄의 감정 일기를 쓴다. (예: 오늘 마음이 흐릿했다.)
      • 아침이나 밤, 거울 앞에서 나 자신에게 말을 건다.
      • 친한 사람에게 아주 짧은 감정 표현을 시도한다. (예: 요즘 좀 지쳤어.)
      • 말로 하기 힘든 감정은 음성 녹음이나 편지 형식으로 기록해본다.

      이처럼 감정을 바깥으로 꺼내는 행위는 단순한 습관이 아닌, 감정 회복의 중요한 실험 도구가 되었습니다. 말은 감정을 분해하고, 다시 바라보게 만들고, 결국 받아들이게 하는 힘을 지녔습니다. 그 과정은 나를 다시 ‘말하는 존재’로 회복시키는 여정이기도 했습니다.

      상실감 속에서 우리는 침묵에 빠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말하기는 그 침묵을 깨는 작은 구멍이자, 그 틈으로 빛이 들어오는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감정을 숨기지 않고, 감정을 밖으로 꺼내는 실험을 통해 저는 자신을 다시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살아가는 감각을 회복하기까지

      상실감이 끝나는 지점은 없지만, 흐름은 바뀐다

      상실감이란 감정은 분명히 강력합니다. 무엇을 잃었는지보다, 그 잃어버림 이후에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깨닫는 순간이 더 아프기도 하죠. 이 감정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지 않습니다. 제가 이 정리 실험을 시작했을 때, 솔직히 마음 한편엔 ‘언젠가는 괜찮아지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 것은, 상실감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흐름이 바뀌는 감정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실험의 마지막 단계는 바로 이 감정 흐름의 변화를 인식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괜찮다’는 선언은 나오지 않았지만, 어느 날부터 저는 이 감정과 함께 걸을 수 있게 되었다는 걸 느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의 공허함이 조금 덜했고, 문득 찾아오는 울컥함이 예전보다 짧아졌으며, 다시 무언가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죠.

      그 변화는 극적이지 않았습니다. 작은 변화였고, 때로는 뒷걸음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 흐름은 바뀌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특히 ‘정리 실험’이라는 이름으로 매일의 감정을 기록하고 관찰한 덕분에 저는 그 변화를 더욱 명확히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감정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입니다. 때로는 예고 없이 다시 깊은 웅덩이로 빠지기도 했고, 때로는 뜻밖의 일상에서 회복의 감각이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오래 잊고 있던 노래 한 곡을 듣다가 눈물이 났지만, 그 눈물은 이전과 달리 슬픔보다 안도에 가까웠습니다. 이제는 감정을 억누르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이 생긴 것이었죠.

      또한, 이 감정 흐름의 변화는 몸으로도 느껴졌습니다. 식욕이 다시 생기기 시작했고, 일상의 루틴을 회복할 수 있었으며, 누군가의 안부에 진심으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변화였지만, 이건 분명히 다시 살아가는 감각이 돌아오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제가 감정 정리 실험에서 특히 중요하게 여겼던 건 ‘균형’이었습니다. 감정을 외면하지 않되, 감정만이 삶의 전부가 되도록 허락하지 않는 것. 슬픔이 오면 슬퍼하되, 그 슬픔이 하루 전체를 덮지 않도록 작은 환기 구멍들을 만들어두는 것. 그게 바로 매일의 의식과 기록, 그리고 조용한 대화의 역할이었죠.

      그리고 어느 순간, 상실감이 더 이상 저를 삼키는 것이 아니라, 저의 일부로 자리 잡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그 감정은 존재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저의 일상을 전부 지배하진 않습니다. 상실이 있었기에 얻게 된 감정의 섬세함, 관계의 소중함, 나 자신을 돌보는 감각은 그 전과는 다른 삶의 밀도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이 실험의 마지막 기록을 마무리하면서 정리한 핵심 변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 상실감은 없어지지 않았지만, 더 이상 나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 작은 루틴과 의식이 감정의 흐름을 조금씩 바꿔주었다.
      • 회복이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안고 다시 걸어가는 것이었다.
      • 감정을 관찰하고 기록하면서, 삶을 다시 살아가는 힘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 실험은 거창한 심리 치료도 아니었고, 특별한 프로그램도 없었습니다. 단지 내가 겪고 있는 감정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바라보는 작은 시도들이 모여 만든 변화였죠. 저는 이 과정을 통해, 감정을 정리한다는 건 결코 잊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리듬을 만들어가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리듬이야말로 다시 살아가는 감각을 되찾게 해주는 가장 확실한 길이었습니다.


      상실을 살아낸다는 것, 그것은 일상의 리듬을 되찾는 일

      이번 감정 정리 실험은 상실감이라는 감정에 정면으로 마주 서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고, 그 안에서 뭔가 정리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죠. 감정은 흐릿했고, 고통은 또렷했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 속에서 저는 ‘감정과 싸우지 않는 연습’을 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연습의 시작은 단순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 억지로 긍정하거나, 애써 이유를 찾기보다는, 지금의 내 마음이 어떤지 조용히 바라보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감정의 흐름을 억제하지 않고, 감정이 나를 지나가도록 허락하는 것이었죠.

      그다음으로 저는 아주 작고 일상적인 행동들을 반복했습니다. 향을 피우고, 차를 마시고, 일기장을 여는 일들. 아무리 사소해 보여도 이 의식들이 하루의 시작과 끝을 정리해주었습니다. 감정이 요동칠 때마다 이 루틴은 정박지처럼 작용했어요. 정신적으로는 혼란스러웠지만, 반복되는 행동이 주는 리듬 덕분에 저는 조금씩 안정감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말하기’와 ‘기록하기’의 힘은 생각보다 훨씬 컸습니다. 처음엔 입을 떼는 것조차 힘들었고, 쓸 말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에만 담아둔 감정을 단 한 줄의 문장으로 꺼내기 시작하면서부터 감정은 조금씩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죠.

      그 문장들은 어설펐지만 솔직했습니다. 말은 나를 다시 나로 돌아오게 해주는 강력한 도구였습니다.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고, 내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면서 상실감이 나를 삼키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머무는 감정이 될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은 바뀌었습니다. 상실감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더 이상 무섭지 않았습니다. 예전에는 그 감정이 나를 부수는 존재였지만, 지금은 나를 다시 조립해가는 요소로 작용했어요. 감정을 억지로 정리하려 들지 않고, 흐르게 두는 방식으로 바꾸자 감정은 제 나름의 질서를 찾아갔습니다.

      이 실험을 통해 저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회복이란 단순히 괜찮아지는 상태가 아니라, 여전히 불완전한 상태로 살아가는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란 걸요. 감정은 정리가 끝나도 다시 들쑥날쑥 올라올 수 있습니다. 그건 실패가 아니라 삶의 일부입니다. 중요한 건 그 감정을 다룰 수 있는 나만의 방식이 생겼다는 사실이죠.

      상실감은 언젠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그 감정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감정을 제대로 마주할 때, 우리는 우리 삶의 구조를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새로운 리듬을 만들어나가는 과정 자체가, 상실을 ‘살아낸다’는 말의 진짜 의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감정 정리 실험을 통해, 상실이 끝나야 비로소 괜찮아지는 게 아니라, 상실과 함께 살아가는 기술을 배울 때 진짜 회복이 시작된다는 걸 체감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혹시 비슷한 감정 속에 있다면, 너무 서두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리란 시간 안에서 천천히 완성되는 것이고, 감정은 그 시간 안에서 조용히 흐르니까요. 어떤 감정이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다루는 연습이 바로 살아가는 힘이라는 것을, 저 역시 여전히 배워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