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단순히 과거의 정보를 재생하는 걸까? 혹은, 보이지 않는 어떤 통신망을 통해 ‘정보’ 그 자체와 상호작용하고 있는 걸까? 최근 뇌과학과 양자정보학이 교차하는 영역에서, 인간의 기억을 단순한 뉴런의 작동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바로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이 인간의 기억 형성과 유지에 일정 부분 관여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입니다.
1) 개념 설명: 양자 정보와 얽힘의 원리
양자 얽힘은 두 개 이상의 입자가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어도 서로의 상태가 즉시 연결되는 현상입니다. 이는 아인슈타인이 ‘유령 같은 원격작용(spooky action at a distance)’이라 부른 개념으로, 정보가 공간과 시간을 초월해 전달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양자정보이론(Quantum Information Theory)에서는 이 얽힘을 통해 정보 단위인 큐비트(qubit)가 물리적 제한을 넘어 상호 연산과 전달을 수행한다고 설명합니다.
우리의 뇌도 마찬가지로, 뉴런 간의 연결망 속에서 전기적 신호만 오가는 단순한 구조가 아닙니다. 뉴런 내부 단백질의 전자 스핀 상태나 미세소관(microtubule)의 양자 진동이 얽힘의 매개체로 작용할 수 있다는 가설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영국의 물리학자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와 마취학자 스튜어트 해머로프(Stuart Hameroff)가 제시한 Orch-OR(Orchestrated Objective Reduction) 이론은 바로 이런 뇌의 양자적 작용을 설명하려는 대표적 시도입니다.
“의식은 복잡한 신경 작용이 아니라, 양자 얽힘의 순간적 붕괴에서 발생한다.” — R. Penrose, S. Hameroff (1996)
이처럼 양자 얽힘은 단순히 입자물리학의 개념을 넘어, ‘정보’와 ‘의식’을 연결하는 다리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억은 물질적 뇌 구조에만 국한될까요? 아니면 우주 자체의 정보망에 얽혀 있는 하나의 파동일까요?
2) 인간 경험과의 연결: 기억이라는 얽힘의 작동
누구나 한 번쯤은 오래전 기억이 갑자기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경험을 합니다. 냄새 하나, 음악 한 소절, 어떤 감정의 파동이 마치 스위치를 켜듯 과거의 장면을 불러옵니다. 이때 뇌의 어느 한 부분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 피질·해마·전전두엽이 동시에 점화되며, 일종의 ‘동시 얽힘 상태’가 형성됩니다.
즉, 기억은 단순한 데이터의 저장이 아니라 ‘얽힘을 통한 재생성’입니다. 뇌의 특정 신경망이 과거의 전기적 패턴을 불러오며, 그 순간 현재의 감정 상태와 결합되어 새로운 기억을 다시 쓰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양자 얽힘에서 말하는 ‘비국소적 연결(nonlocal connection)’의 특성과 놀랍게 닮아 있습니다.
일본 도쿄대학교의 신경물리학 연구에서는, 기억 회상 시 뇌파 간 위상 동기화가 일정한 주기로 얽히는 양상을 보인다고 보고했습니다. 이 위상 정합(phase synchronization)은 양자적 공명(coherence) 상태를 유지하는 방식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기억은 물리적 거리보다 ‘정보적 연결성’이 더 중요한 세계에 속해 있을지 모릅니다.
3) 실험적 근거 및 연구 사례
양자 얽힘이 뇌 수준에서 실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는 아직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그러나 일부 실험은 흥미로운 단서를 제공합니다. 2020년 스위스 제네바 대학 연구팀은 ‘거시적 얽힘(macroscopic entanglement)’이 생물학적 시스템에서도 순간적으로 유지될 수 있음을 실험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DOI: 10.1038/s41567-020-0939-5). 이는 광자나 전자가 아닌 단백질 복합체 수준에서도 양자 상호작용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또한 2023년 케임브리지대의 연구에서는, 해마 신경세포가 특정한 주파수대(약 40Hz)에서 일시적으로 양자 코히런스와 유사한 간섭 패턴을 보였다고 보고했습니다. 이 현상은 기억 인출 시 뇌의 특정 영역이 순간적으로 동일한 위상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정보 통합을 가속화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뇌는 단순한 신호 처리기가 아니라, 양자 정보 처리기(quantum information processor)로 볼 여지가 있다.” — Cambridge Neuroscience Journal (2023)
이러한 연구들은 아직 초기 단계지만, 뇌가 우주의 근본적 정보 구조와 공명할 수 있다는 개념을 실험적으로 탐색하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기억은 단순한 뉴런의 잔상이라기보다, 얽힘 상태의 정보 재구성일 수 있습니다.
4) 철학적 해석 및 확장: 기억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만약 기억이 양자 얽힘의 산물이라면, 우리는 ‘나의 기억’과 ‘우주의 정보’ 사이의 경계를 새롭게 정의해야 합니다. 고전철학에서는 기억을 ‘정신의 창고’로, 현대 심리학에서는 ‘신경망의 산물’로 보았지만, 양자역학적 관점에서는 ‘정보 파동의 패턴’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모든 지식은 기억의 회상’이라고 말했습니다. 양자정보이론적으로 해석하면, 우리의 뇌는 이미 얽혀 있는 우주의 데이터베이스에서 특정 파동을 ‘불러오는’ 장치일 수 있습니다. 즉, 학습이란 새로운 정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양자 정보망과의 공명을 강화하는 과정이라는 뜻입니다.
이 개념은 현대 인공지능 연구에서도 흥미로운 시사점을 줍니다. AI의 학습 모델이 ‘데이터 간 얽힘 패턴’을 찾아내듯, 인간의 기억 또한 경험의 파동을 얽혀 있는 정보 공간에서 재구성합니다. 따라서 인간의 창의력은, 단순히 축적된 데이터의 결과가 아니라 양자적 연결의 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결론: 뇌 속의 우주, 기억 속의 얽힘
‘양자 정보와 기억의 얽힘’은 아직 실험적으로 완전한 증명을 얻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개념은 인간 의식과 우주의 본질을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기억이 단순한 전기신호의 흔적이라면, 왜 감정과 의미를 그렇게 강렬히 동반할까요? 왜 우리는 때로, 설명할 수 없는 ‘공유된 기억’이나 ‘집단적 직감’을 경험할까요?
양자 얽힘은 이러한 물음에 대한 하나의 해석을 제시합니다. 우리의 뇌는 고립된 시스템이 아니라, 우주적 정보의 일부로서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열린 구조입니다. 기억은 그 상호작용의 흔적이며, 우리가 ‘나’를 인식하는 근본적 과정입니다.
결국, 기억의 본질은 정보의 흐름 속에서 드러나는 **‘얽힘된 자아’**의 형태일지 모릅니다. 우리는 우주가 자신을 기억하는 방식 중 하나로 존재하며, 매 순간 새로운 얽힘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