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그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우리는 종종 과거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믿지만, 사실 기억은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인간의 의식 속 과거는 마치 양자 파동함수(Quantum Wave Function)처럼, 관측되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진동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물리학의 파동함수 개념을 통해, 기억이 왜 사라지지 않고 ‘잔향’처럼 남아 우리를 움직이는지 과학적·철학적으로 살펴봅니다.
1) 파동함수란 무엇인가?
양자역학에서 파동함수는 입자의 상태를 확률적으로 나타내는 수학적 표현입니다. 입자는 고정된 위치가 아니라, 여러 가능성으로 퍼져 있습니다. 이 확률적 퍼짐을 설명하는 것이 바로 파동함수(ψ)입니다. 파동함수는 측정되기 전까지 무한히 퍼져 있지만, 관측이 이루어지는 순간 하나의 값으로 ‘붕괴(collapse)’합니다. 즉, 파동함수는 ‘존재의 잠재성’을 나타내는 공식입니다.
2) 기억의 파동함수: 사라지지 않는 가능성
인간의 기억도 유사한 구조를 보입니다. 잊혔다고 생각하는 기억은 단지 ‘관측되지 않을 뿐’입니다. 뇌의 시냅스 연결 속에는 여전히 흔적이 남아 있으며, 특정 자극이나 감정이 그것을 다시 활성화시키면, 마치 파동함수가 붕괴하듯 기억이 현재 의식으로 되살아납니다. 따라서 잊음이란 ‘삭제’가 아니라, ‘비활성화된 확률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관측되지 않을 뿐이다.” — 신경학자 에릭 캔델(Eric Kandel)
3) 뇌과학의 관점: 기억의 물리적 흔적
노벨상 수상자 에릭 캔델의 연구에 따르면, 기억은 시냅스 간 신호전달의 강도 변화로 저장됩니다. 단기기억은 전기적 신호로, 장기기억은 단백질 합성으로 유지됩니다. 이 과정에서 신경세포 간의 연결망은 새로운 구조를 형성하며, 한 번 형성된 네트워크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오래된 기억은 미세한 신경 연결 속에서 ‘잠재적 파동함수’처럼 존재합니다.
4) 양자 파동과 기억의 공통 구조
| 양자 파동함수 | 기억의 작용 |
|---|---|
| 여러 가능성이 공존 | 다양한 감정과 맥락이 함께 존재 |
| 관측 시 붕괴 | 특정 자극이 있을 때 기억이 떠오름 |
| 사라지지 않고 퍼짐 | 의식에서 사라져도 무의식 속에 잔존 |
5) 감정의 잔향: 파동처럼 남는 기억의 에너지
감정이 강하게 수반된 기억일수록 더 오래 남습니다. 공포, 사랑, 상실 같은 감정은 뇌의 편도체(amygdala) 활동을 증가시켜 기억의 ‘파동 진폭’을 강화합니다. 이는 파동함수가 높은 확률밀도를 갖는 상태와 비슷합니다. 시간이 지나도 그 파동은 잔향처럼 감정의 벽에 부딪히며 되돌아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이 약”이라 말하면서도, 어떤 기억은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6) 철학적 시각: 과거는 사라지는가?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은 시간을 “흐르는 것이 아니라 축적되는 것”이라 보았습니다. 그는 모든 과거는 현재 속에 ‘응축된 형태로’ 존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양자 파동함수의 개념과도 유사합니다. 과거는 소멸하지 않고, 단지 다른 형태로 파동하며 현재에 간섭합니다. 우리의 무의식은 바로 그 ‘간섭무늬’를 읽어내는 해석기입니다.
“과거는 지나간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현재를 구성한다.” — 앙리 베르그송
7) 기억의 붕괴와 재창조
흥미롭게도 기억은 다시 떠올릴 때마다 조금씩 변합니다. 신경학에서는 이를 ‘재기억화(reconsolidation)’라 부릅니다. 이는 파동함수가 관측될 때마다 새로운 상태로 붕괴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즉, 기억은 매번 동일하게 재현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 그것은 다시 관측되고, 다시 구성됩니다. 그래서 과거는 고정된 사실이 아니라, 매번 새롭게 만들어지는 ‘양자적 서사’입니다.
8) 정보 보존의 우주: 기억은 사라질 수 없는 법칙
물리학의 ‘정보 보존 법칙’에 따르면, 에너지와 정보는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블랙홀조차 정보의 흔적을 남긴다고 스티븐 호킹은 말했습니다. 인간의 기억 역시 이 우주적 원리를 따릅니다. 즉, 기억은 형태를 바꾸더라도, 에너지와 정보로서 존재를 지속합니다. 우리가 잊는다는 것은 단지 ‘관측하지 않음’일 뿐, 정보는 여전히 우주 어딘가에 남아 있습니다.
결론
양자 파동함수는 우주의 모든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하다가 관측에 의해 하나로 정해지는 원리를 설명합니다. 인간의 기억도 마찬가지입니다 — 잊혔던 기억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비활성화된 파동’으로 존재하다가 어떤 순간, 다시 관측되어 현재로 되돌아옵니다. 따라서 우리는 과거를 잊는 존재가 아니라, 과거를 새롭게 관측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의식이 움직이는 한, 모든 기억은 여전히 우주 어딘가에서 진동하고 있습니다.
참고 자료
- Wave Function (Wikipedia)
- Mechanisms of Memory Reconsolidation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Memory
FAQ
- 기억은 정말 사라지지 않나요?
-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뇌의 연결망 속에 미세한 흔적으로 남아 있다가 특정 자극에 의해 재활성화됩니다.
- 파동함수와 기억이 어떤 관련이 있나요?
- 둘 다 ‘관측 전에는 여러 가능성이 공존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구조를 가집니다. 기억도 의식되지 않을 때는 잠재된 형태로 존재합니다.
- 잊은 기억이 다시 떠오르는 이유는?
- 감정적 자극이나 유사한 상황이 과거의 신경 패턴을 다시 활성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이는 일종의 ‘의식적 관측’입니다.
